‘서울의 봄’에 맞세우며 대대적인 미화 작업
사실왜곡 넘어 과는 빼고 사소한 공 부풀려
조선일보가 앞장 한국 현대사 재건축 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면서 4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언론은 이 같은 흥행에 대해 정치권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면서 지난해 전두환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과정을 그린 영화 ‘서울의봄’과 맞세우며 ‘건국전쟁’을 놓고 정치권의 여야 간에, 보수와 진보 간에 ‘영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서울의 봄’과 ‘건국 전쟁’ 비슷한 역사물인가
그러나 이 같은 비교는 과연 타당한가. 두 영화를 각각 좌와 우를 대표하는 영화로, 똑같이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을 영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부당하거나 소홀하게 취급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취지는 두 영화에서 모두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 그러나 ‘서울의 봄’이 폭넓은 인정과 검증을 받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역사를 영화화’했다면 건국전쟁은 거꾸로 ‘다큐와 영화를 역사화’하려 하고 있다. 역사다큐의 형식을 빌어 사실상의 ‘이승만 드라마’를 쓴 것이라고 봐야 마땅하다.
건국전쟁도 그렇지만 언론들은 이승만 및 그의 시대와 관련된 복합적인 역사를 간단한 몇 개의 사실과 짧은 문장들로 쉽게 재단하고 있다. 적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과 기록, 학계 등에서의 평가들을 외면하고 몇몇 단편적인 장면들을 골라내서는 그동안 편향된 시각에 의해 무시되고 폄하됐다면서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균형 잡힌 사실들의 수집과 제시가 아닌 이승만 미화를 뒷받침하는 ‘파편적인 사실’들을, 또 ‘사실의 파편’들을, 게다가 배경이나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단편적 짜깁기로써 극적인 서사로 꾸미고 있다.
이들 보도는 건국 역사가 아닌 ‘건국 신화’ 쓰기로 이름 붙여야 할 정도다. 이승만은 초대 건국 대통령이나 ‘건국의 아버지’를 넘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이승만으로부터 시작됐다”는, 마치 ‘창조주’와 같은 이로 드높여지고 있다.
급기야 성경 창세기의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에 비유하는 글까지 등장했다. 13일자 국민일보에 실린, 최상준 미국 베데스다 대학 교수라는 이의 칼럼은 이승만을 모세에 빗대 “조선이란 애굽에서 조선의 백성들을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로 끌어냈다”고 칭송한다.
그의 대통령 재임 12년간 숱한 양민 학살과 보도연맹 사건, 4.3사태 등으로 무고한 이들의 피가 바닷물처럼 흘렀던 참상은 건국전쟁이나 보수 언론들의 이승만 재조명 보도에서는 사소한 일이나 불가피한 과오 정도로 처리되고 만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그리고자 했다는 제작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자신이 보훈부 장관 재임 시절 이승만 재조명을 적극 주장하고 기념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던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관람을 추천하면서 “외눈박이 역사관에 매몰되지 않고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자”고 얘기한다.
과(過)는 빼고 공(功)만 얘기하는 언론
그러나 이 다큐는 과는 없이 공만 얘기한다. 나아가 과(過)조차 공(功)으로 만들고 있다. 건국 전쟁이나 보수 언론들의 이승만 재평가 보도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동안 과를 너무 크게 생각했으니 이제는 공만 봐야 한다”는 발언을 되살리게 하는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당시 조선일보는 인터뷰에 응한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의 말을 빌어 중국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인용하며 “공칠과삼으로 평가한 중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조선일보 자신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과에 대해서는 7이나 3은커녕 1의 할애도 없이 거의 전적인 미화에만 나서고 있다.
이승만의 가장 큰 치적들 중의 하나로 농지개혁을 내세운 것부터가 사실관계의 왜곡이다. 이는 이승만이 아닌 초대 농림부 장관이었던 죽산 조봉암이 주도했던 것으로, 북한에서 전격적으로 단행된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대해 당시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농민과 사회세력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조봉암이 이승만의 농림부장관직 제안을 수용한 것도 농지개혁을 단행한다는 조건에서였던 것이다.
건국전쟁의 이승만 미화는 이승만의 생애에서의 몇몇 장면들로 이승만 전체를 그리는 것으로 이뤄지고 있다. 4.19 시위 직후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학생들을 문병한 이승만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넣어 이승만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는 식이다. 1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이 신문 출신 함영준 씨의 칼럼은 “악인도 왜 선하고 긍정적인 모습이 없었겠는가”라고 쓰고 있다. 이 같은 논리를 극단으로 밀고 나간다면 독일의 나치 히틀러조차 지극히 인간적인 지도자로, 또 집권 초기에 질서를 회복시키고 실업률을 낮추며 항공산업을 발전시킨 공로로 인해 독일의 혼란을 바로잡은 지도자로 평가받게 된다.
건국전쟁의 역사 바로 쓰기는 현대사에 대한 ‘잘못된 역사 교육 바로잡기’ 주장으로 이어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영화를 보고 난 뒤 “학창시절 잘못 배운 역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했다. 파이낸셜뉴스의 노동일 주필은 칼럼에서 이승만에 대해 오랜 기간 부정적 평가로 일관했다면서 이를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좌파적 교육의 영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 지우기’ ‘이승만 죽이기’라는 거대한 공작의 설계자가 있었다면서 그것은 북한이라고 지목한다. 그런 논리에 의해 “남한의 친북 주사파 세력은 그 지령대로 움직인 정신적인 간첩이었다”는 결론까지 주장하게 된다.
이 같은 흐름들이 한데 모여서 이승만이라는 인물의 복권(復權) 및 격상은 박정희와 산업화 신화와 함께 ‘건국 신화’라는 또 하나의 한국 현대사 기둥 세우기로, 한국 현대사의 역사를 새롭게 재건축하는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친일과 독재에 대한 변호를 넘어 친일과 독재 자체의 부인, 부인을 넘어서 정당화 시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 재평가, 이승만의 복권은 이른바 ‘보수’ 세력의 오랜 숙원이었다. 보수언론들의 이승만 재조명은 지난 90년대부터 시도됐다. 처음으로 이 사안을 꺼내고 나선 것은 역시 조선일보였다. 이 신문은 해방 50주년인 95년 1월부터 ‘거대한 생애 이승만’이라는 제목의 연재기사를 65차례 게재했다. 이는 1960년 4.19 이후 사라졌던 ‘이승만’에 대한 논쟁을 본격적으로 재등장시킨 것으로는 사실상 첫 보도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승만 재조명’은 다시 불려 나와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 등과 맞물리며 전개됐다.
최근의 이승만 재평가 작업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전방위적으로, 보수 세력의 열띤 호응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정부에 의한 공식적 뒷받침을 받고 있다. 역대 정부 최초로 윤석열 정권에서 이승만 기념사업을 공론화하고 수백억 원의 보훈부 예산까지 책정해 기념관 건립을 강행하고 있다. 1월에는 이승만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다수의 보수 언론들이 장단을 따라가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밀어주고 끌어주는 식인 가운데 특히 개신교계가 열광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다큐 건국전쟁의 단체관람에 나서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전광훈 목사의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장로님이 건국한 기독교 국가”라는 말처럼 개신교계에서 이승만 재평가는 ‘신앙’의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승만의 과와 함께 공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 최소한의 복권을 하겠다며 시작됐던 이승만 재평가 작업은 이제 보수 정치권과 언론, 보수 개신교계 등의 광범위한 지원 속에 어디까지 나아갈지 끝을 알 수 없는 국면으로 돼 가고 있다.
조선일보가 이승만 특집 기사를 내보내던 95년에 편집국장이었던 인보길 씨(현 뉴데일리 회장)의 책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은 1952년 자유당 정권에 의한 폭력 사태 및 이른바 발췌개헌 등 부산 정치파동을 ‘한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4.19에 대해 ‘이승만이 그토록 꿈꾸던 똑똑한 국민 만들기의 완성’이었다면서 “시민 시위 일주일 만에 자진 하야를 결정하고 부상 학생의 병원을 찾아가서는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을 칭찬하고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던” 일을 들고 있다. 4.19혁명조차 이승만의 공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이 같은 주장과 논리가 일부의 강변으로 그치지 않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나선다면, 이승만 복권을 통해 건국과 산업화는 물론이고 민주화의 기원까지 자신들의 것으로 삼으려는 '대담하기 짝이 없는' 시도가 벌어질 수도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8월부터 작가 복거일의 ‘이승만 오디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이 신문을 중심으로 한 지난 20여 년간의 이승만 신화 만들기라는 대항해(오디세이)는 이제 ‘정당한 명예회복’과 복권 수준을 넘어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오래된 합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것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넘어 ‘역사’ 자체의 기초가 붕괴되고 뒤집혀지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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