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제껏 알고 있던 역사는 우리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강대국 사이에 껴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 찌그러 들은 상처뿐인 역사 그 모습은 본래 우리의 모습이 아니다. 중국보다 강하고 넓은 국토를 7,000년 동안이나 유지해 오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하고 가장 뛰어난 민족이 우리 민족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전반적으로 우리의 자취를 없애 버리고 실제 보다 보태고 늘리고 과장 왜곡해서 쓰여졌다. 일본의 역사는 허구와 날조의 역사이다. 시조라는 신무서부터 허구의 인물과 통일된 국가가 아닌 소국의 역사를 이리저리 밀고 땡기고 엿가락 처럼 느리고 줄여서 쓴 그야말로 소설같은 역사다. 반대로 우리 역사는 실제 보다 축소되고 왜곡해서 쓰여졌다. 그래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역사는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고 과장할 것도 없는 바로 진실 그대로의 역사다.
무릇 역사라는 것이 승리자의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승리자가 자기를 미화하고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역사를 조작해 왔다는 것이다. 이기면 충신이요 지면 역적이라는 말이 있드시 난을 일으켜서 성공하면 위대한 나라(왕조)를 하나 세우거나 정권을 잡는 것이요 실패하면 명분이 어떻든 만고의 역적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이다. 고대에서부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이 센나라는 주변의 힘없는 나라를 무력으로 짓밟고 빼았아 왔다. 전쟁에서 이기면 상국이요 주인이 되는 것이고, 힘이 없어 전쟁에 지면 그나라에 복종해야 하는 노예나 복속국이 되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기는 동물의 사회나 우리 인간들 사회나 다를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 한웅천왕이나 단군조선 시대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했었다. 그래서 항상 주변 제후국 들을 지휘하고 통솔하여왔다. 그런데 그저변엔 우리의 지배내지 지도 이념이 있었다. 후세의 지나족들의 힘에의한 약육강식인 일방적인 군주 중심의 전제주의와는 달랐다.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 사상이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바로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다스리는 사람이나 일반백성이나 역할만 다를뿐 똑 같다는 것이다. 바로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는 평등 인권사상이 9,000년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힘있다고 남을 괴롭히거나 빼앗는 것이 아니고 약한사람은 보호해주고 위기에 처한사람은 구출해주어 위기를 벗어나게 하는등 나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세상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사회 바로 그것이었다. 지도 이념이 그러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왕을 잘 따랐고 주변국들도 이의 없이 지도 통솔을 잘 따랐다. 그렇기 때문에 한인시대 3,301년 과 한웅천왕의 배달국 1,565년 단군조선의 2096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유지 할수 있었던 것이다. 진시왕 이후 중국의 대부분의 역대 왕조들이 300년도 안돼 멸망 해 버린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들어나는 것이다. 힘으로 백성을 제압해서 하는 전제 정치와 근본 이념이 백성을 위하는 홍익인간 사상하고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1. 아(我)와 비아(非我)
무릇 인류사가 전쟁을 통해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빼고 역사를 논할수가 없다. 전쟁이라 하면 나와 적이 있다. 따라서 적과 우리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역사서를 읽을 때는 항상 그 관념 하에 이해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를 왜하느냐 하며는 우리역사서 중에 가장 정통 역사서요 보배라고 떠받들어지는 삼국사기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삼국사기는 아와 비아가 없다. 저자 김부식은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린지도 모르고 있다. 오히려 적을 올리고 우리를 비하하고 있다. 아무리 김부식이 신라의 후손이고 신라 중심의 사고로 썼다고 하여도 고구려 역사서를 저술한다면 고구려와 중국이 전쟁을 할 때는 고구려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되는데 거꾸로 중국편에 서서 역사를 쓰고 있다. 중국이 우리고 고구려가 적인것 같은 인상을 짙게 받는다. 고수 대전은 동양 전투사상 가장큰 전쟁이다. 침략군 수나라 오랑캐 병사의 수가 113만명에 후방보급등 지원부대 병력을 합치면 5백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전쟁이었다. 물론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났지만 김부식의 기술을 보면 아주 답답하다. 적군의 괴수를 수양제께서 운운하며 깍듯이 높이고 양광의 어거지 출정사를 서너페이지나 자세히 기술하고, 양광의 지휘하는 모습과 수나라 장수들의 이름과 활동 내용은 줄줄이 소개 하면서 우리 고구려 장수의 이름은 고사하고 우리군의 전투 내용은 간간히 짧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무찌른 우리의 용맹스럽고 자랑스런 장수들의 이름은 을지문덕 한명만 나올 뿐이다. 우리 군사들은 전투에 임함에 있어서 일당백의 정신으로 싸운다. 그래서 10분의 1밖에 안되는 군사로 100만 대군을 무찌른 것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역사에 길이 빛날 전투인가? 이런 승전보를 우리편에 서서 기술해야지 중국편에 서서그리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 역사서가 아니고 차라리 중국역사서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부식은 애당초 삼국사기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다른 역사서도 많았을텐데 괜시리 사대주의로 온통 싸발른 머리로 삼국사기를 써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쪼그라 들어 한쪽구석에 쳐박혀서 제나라 역사가 어땠는지도 모른체 헤매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한 나라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지나족들은 우리나라를 쳐들어 올 때 항상 있지도 않은 기자와 한사군을 내세워 저희 땅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게다 저들의 간사한 사가들과 무식한 왕들이 만들어낸 엉터리 역사를 내세워 그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의 어떤 분쟁 에 대비해서라도 철저하게 역사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중국 과 일본의 역사들이 상당부분 조작되어있다.
* 춘추필법 春秋筆法
춘추필법은 공자가 쓴 춘추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 초년(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에 이르기까지 12대 242년간의 연대기인 《춘추 春秋》에서 비롯 되었는데, 선악을 논하고 대의명분을 밝혀 비판적인 태도로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만 입각하여 기록하는 것으로 상당히 진실에 입각한 공명정대한 기술 방법으로 후세에 널리 칭송을 받았지만 그것은 자기나라에 한해서 그런 것이었고 남의 나라나 민족에 관한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나라는 높이고 자세하게 기술하고 남의 나라는 깍아 내리고 간단히 기술하는 이기주의 적인 필법이었다. 주변에 멀리있는 나라는 다 오랑캐요 미개 민족으로 기술해 버린 것이다. 원래 이(夷)란 큰대(大)자와 활궁(弓)자가 합쳐서 된 말타고 활잘쏘는 우리민족을 일컷는 좋은 의미의 이(夷)자였는데 공자가 이것을 오랑캐이자로 바꿔 버린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부르는 동이족은 동쪽 오랑캐란 뜻으로 부르는 것이다. 원래 우리는 동이족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이것도 시급히 고쳐야 할 것중에 하나다.한(桓)족으로 부르던지 좋은 이름으로 바꿔야 된다. 중국역사책에 의존하다보니 동이족이 그냥 입에 붙어 버렸는데 아주 잘못된 것이다. 스스로를 오랑캐라고 부르고 있는 꼴이니 한심하지 않은가? 그리고 중원대륙에서 지나족들이 통일시대를 갖기 전에 저희보다 강하고 선진 문명인 우리 한웅시대와 단군조선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다 빼 버리고 간략하고 희미하게 적었다. 이래서 우리역사는 쪼그라 들기 시작하더니 고구려 패망 이후 내리 쪼그라들어 오늘날 까지 반도 구석에 웅크린채 기도 못피고 살아온 꼴이 된 것이다. 결과론 이지만 공자는 우리민족에겐 아주 몹쓸 사람이다.
공자의 춘추이후 중국의 사서들이 다그렇다.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전한서>, 범엽의 <후한서>, 진수의
<삼국지>할 것없이 이후의 모든 사서들이 모두 저희는 높이고 우리는 일개 변방의 조그만 이름없는 오랑캐로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원래 자기에겐 관대하고 남에게는 냉정한 것이 생리인데 이걸 나쁘다고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 역사서를 볼 때는 그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거다. 우리의 사서들이 대부분 소실 돼 버린 현실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들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들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배경에 의해서 씌여졌다는 것을 감안하고 봐야만 가려진 우리의 모습을 볼수가 있기 때문이다.
2. 지역이 확실해야 한다.
무릇 모든 사건에는 사람(who)과 때(when) 그리고 장소(where)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역사서들의 기사에는 역사적 사건들의 장소 즉 지명이 분명치가 않다. 이게 역사왜곡의 단초가 된면도 다분히 있다. 우리들의 각별한 노력으로 규명해야될 중요한 부분이다. 패수와 대수가 임진강과 예성강일때 하고 요녕성 요하근처의 태자하와 혼하 일때하고는 그의미가 전연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강역이 순식간에 바뀌기 때문이다. 패수는 북경근처의 난하라는 설도 있다. 그래서 역사가 들이 바삐 뛰어서 이런 것들을 규명해야 하는데 뒷짐만 진채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그래서 차라리 이들을 내보내고 좀 부족하더라도 우리들이 나서자는거다. 이부분은 <지명에 관하여>에서 논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3. 천손(天孫)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천손족이다.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박제상의 <부도지>를 보면 그렇게 나와 있다. 한단고기에서 한인시대를 삼성기 하편 전반부에 "7세에 전하여 역년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한인 시대 이전의 창세기에 관해서 <부도지>에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내용을 보면 우리 민족이 천손족이고 그중에서도 장손족이다. 마고성에서 출궁하여 장자인 황궁씨가 무리를 이끌고 천산주(天山洲)에 이른다. 그리고 그의 장자인 유인씨 대가 1,000여년 계속되고 이어서 한인씨, 한웅, 단군왕검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부도지 10장 일부를 잠시보도록 하자
『황궁씨가 천산주에 도착하여, 해혹(解惑)하여 복본(復本)할 것을 서약하고, 무리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에 근면하도록 고하였다. 곧 장자(長子) 유인(有因)씨에게 명하여, 인세(人世)의 일을 밝히게 하고, 차자(此子) 와 삼자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巡行)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곧 천산(天山)에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조음(調音)을 울려, 인세의 혹량을 남김 없이 없앨 것을 도모하고, 기어이 대성 회복의 서약을 성취하였다. 이에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 받으니, 이것은 곧 천지본음(天地本音)의 상(象)으로, 그것은 진실로 근본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밤에는 어둠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겨, 나무를 뚫어서 마찰을 시켜 불을 일으켜서 밝게 비춰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또 음식물을 익혀서 먹는 법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내고 나서, 아들 한인(桓因)씨에게 천부를 전하고 곧 산으로 들어가 계불을 전수(專修)하며 나오지 아니하였다. 한인씨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인세를 증리(證理)하는 일을 크게 밝히니, 이에 햇빛이 고르게 비추고, 기후가 순조로와 생물들이 거의 안도함을 얻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괴상한 모습이 점점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황궁씨에서 유인씨 그리고 한인씨로 이어지는 계보를 밝혀 주고 있다.(성경에 나오는 창세기와 같은 것이다. 부도지를 100%믿어야 할지는 좀 의문인데 사실 좀 믿기 어려운 바도 있지만 우리 인류가 아직 그기원을 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게 아니면 1만년 운운하는 우리역사의 기원을 밝혀낼 방법이 없다. 그리고 우리 전래에는 마고에 얽힌 전설이 많이 있다. 삼신할미도 있고 견우와 직녀 이야기도있고 바둑이나 윷놀이등도 우리고유의 아주 오래된 놀이들도 많다. 100% 부정하는 것도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규명해볼 만한 소재가 꽤있다. 천부경도있고 강강수월래, 무궁화, 아리랑등 다른 민족엔 없는 아주 오래된 우리만의 고유한 풍속들이 많은 것도 우리 민족의 기원과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제사의 기원도 우리 민족이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은 우리 천속족 만이 할수있는 의식이었었다. 전적으로 부정하면 여기서 애기를 끝내야 되니까 일단 긍정하는 것으로 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하자.)
식민사학자들이 매도하는 단군왕검의 탄생신화나 고주몽의 탄생설화 박혁거세의 탄생설화등은 다 천손족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이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다. 곰에서 사람이 태어날 수 없고, 알에서 사람이 태어날수는 없는 것이다. 단군왕검이나 고주몽이나 박혁거세는 다 사람 몸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탄생 설화들은 훗날 주변 또는 후세 사람들이 지어 낸 것이다. 요새도 우리들은 누가 무얼 잘하면 귀신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잘한다는 이야기를 과장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를 미화한다. 생전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더욱더 미화를 하고 아주 흉칙한 범죄를 지은 사람 까지도 죽고나면 미운 마음을 접는다. 이해를 하게 되는것이다. 또 사람이 출세를 하면 자기의 출신을 미화하고 싶어진다. 시세말로 아주 미천한 신분이던 사람도 돈을 많이 벌던지 출세를 하면 어두웠던 과거는 지워 버리고 싶어한다. 그래서 조작을 한다. 아주 화려한 과거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전두환이 대통령 되고 나서도 상당했다. '황강에서 북악까지'란 책도 써내고 자기 아버지 무덤을 왕능처럼 쌓아올리고 좌우간 대단했다. 그러니 옛날에 왕들은 어떻했겠는가? 거기다 상고시대 사람들에게는 자연 현상들이 대단한 작용을 했다. 기후 이변이 나타나면 이것이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했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왕이나 권력있는 정치인이 죽을 징조로 보았고, 일식이나 월식현상이 일어나면 왕과 권력집단의 무능에 대한 경고로 보았다. 그런 일반적인 상황에다 우리민족은 천손족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실제로 다른 민족에 비해서 힘과 지혜가 우월했고 다른 민족들이 그렇게 우러러 보았다. 천손족으로서 자타가 인정하는 민족이었으며 자부심 또한 대단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민족과 차별화를 꾀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출생을 하늘과 연관시킨 탄생설화를 만들어낸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도 국가로 오랜 세월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통하던 시대였다. 하늘의 뜻을 표방하는 것이 백성들을 다스리는데나 주변국들을 통솔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시대였던 것이다. 역사란 무릇 그 당시의 의식수준이나 문화 수준 등을 감안해서 이해하려고 해야지 오늘날의 과학적인 잣대만으로 저을질 하여서는 신화라고 매도하는 등 본질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볼 때는 천손사상(天孫思想)을 염두에 두고 보아야 만이 전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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