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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의 경세제민 [오마이 뉴스 시리즈]

뉴잭스윙 선비 2023. 9. 1. 16:14

어느 경제학자의 끔찍한 예언... 국민의 전반적 상태 걱정된다

민주주의의 후퇴, 불평등이 근본 원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아래의 인용문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1879년에 발간된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진보와 빈곤>(김윤상 역, 비봉출판사)에 나오는 구절인데, 오래전에 쓰인 내용임에도 이명박 정권의 성격과 당시 한국 사회의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여겨져 여러 사람이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 2009년에는 부동산 때문에 한국 국민의 도덕성도 타락한 듯 보였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주민들이 앞장서서 뉴타운 사업 지정을 요청했고, 2008년 총선에서는 서울의 48개 선거구에서 40개 의석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차지했을 정도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들은 한결같이 뉴타운 사업으로 부동산 자본이득을 안겨주겠다고 공약했다. 그래서 혹자는 당시의 한국 정치를 '탐욕의 정치'라고 묘사했다. 유권자의 탐욕에 기대 표를 얻으려 했다는 뜻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 중심의 경제학'을 복원하고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설파한 경제학자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분명해진 요즘, 그의 경제사상은 전 세계에서 유력한 대안 사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가 남긴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과 <사회문제의 경제학>(전강수 역, 돌베개)에는 뛰어난 경제사상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군데군데 탁월한 정치적 견해도 담겨 있다.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한 헨리 조지

헨리 조지의 정치사상에는 두드러지는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가 부패할 때에는 국민의 도덕성도 타락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면, 부와 권력의 평등한 분배도 실현된다. 

문제는 평등한 부의 분배 상태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사회가 진보하면서 토지가치가 상승하면, 토지가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한 불평등이 심해지는데, 그것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형해화시킨다. 헨리 조지는 형식적 민주주의는 일정한 조건만 있으면 간단히 전제체제로 변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제체제가 국민의 이름과 힘으로 진전되기 때문이다. 민주 공화정을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전제체제로 바꾸는 데는 헌법을 고치거나 보통선거 제도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토지독점으로 불평등이 심해지고 민주주의가 형해화하면, 국민성도 부패한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느라 눈이 멀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법이 없다. 형식적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가 폭정을 일삼아도, 그를 매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꾸준히 불어나는 재산을 바라보며 '이대로!'를 외칠 뿐이다. 그렇다고 가난한 대중이 국가를 정의롭게 만들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일에 나서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 허덕이고 답답한 상황에 불만을 품고 부글거리기는 하지만,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게다가 "권력이 세습되지도 않고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헨리 조지의 말이다. 기득권층도, 대중도 참 자유와 평등에 무관심해질 때, "정치꾼들이 권력을 손에 넣고 로마 황제 근위대처럼 매관매직을 일삼거나, 선동가가 권력을 잡고 한동안 휘두르다가 더 악랄한 선동가로 대체될 뿐이다." 이것도 역시 헨리 조지의 말이다. 모두(冒頭)의 인용문에서 헨리 조지가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고 비관적으로 단언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헨리 조지의 패러다임에 비춰본 한국 사회  

헨리 조지가 제시한 패러다임에 비추어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 어떻게 될까?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수립하자, 전 세계는 대한민국을 주목했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남북한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노력은 각광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때마침 K-컬처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코로나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면서 한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글로벌 대통령'으로 칭송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찬란했던 민주국가가 순식간에 박정희·전두환 치하의 독재국가처럼 변했다. 군인들이 총칼을 사용해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아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현 정권의 집권 과정에 불법과 무력이 동원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가 훼손되지 않았는데도, 정권의 성격이 급변했으니 국민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헨리 조지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은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원인은 바로 불평등에 있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정부는 외형상 화려해 보이는 일에 몰두하느라 사회 안에서 불평등이라고 하는 암종이 자라나는 것을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 부동산값은 역대 정부 최고로 폭등했고, 한 곳의 투기를 잡으면 다른 곳으로 번지는 풍선효과는 역대 정부 최다로 발발했다. 부동산문제로 인한 불평등은 노력소득의 격차로 인한 불평등에 비해 국민의 도덕성에 훨씬 나쁜 영향을 끼친다. 

생산적 투자에는 관심 없이 비업무용 땅 사재기에 올인하는 기업, 대출받아서 갭투자 하는 데 관심과 정력을 다 쏟은 회사원, 부동산 특강 강사를 따라 아파트 사냥 투어에 나섰던 부녀자, '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을 매입한 2030 세대, 건물주가 꿈인 중학생 등이 한때 우리 사회의 상징처럼 떠오른 것을 떠올려 보라. 

부동산 과다보유자들과 토건족들은 희희낙락했고, 부동산 투기의 바람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원인을 따지지 않은 채 불만을 품고 부글거렸다. 우리 사회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와 자유를 실현하고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촛불 정부의 실력자들도 매일매일의 지지율 동향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개혁적 부동산 정책을 과감하게 펼치는 데는 소홀했다.

찬란했던 민주 정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국민 다수의 불만과 분노는 보통선거 제도하에서 소위 '검찰 정권'을 탄생시키는 쪽으로 표출되었고, 찬란했던 민주 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기본 인권을 마음껏 누리던 국민은 짧은 기간에 아주 사소한 일에서조차 정권의 탄압에 신경 써야만 하는 군색한 처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권력을 손에 넣은 정치꾼들은 신난 듯 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펼쳤던 몇 안 되는 불평등 완화 정책조차 모조리 후퇴시키고 있다. 우리 국민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외면한 후과(後果)가 너무 크다. 

헨리 조지는 국민이 깨어나서 권력자를 제대로 제어하지 않으면, 더 악한 선동가에게 권력이 넘어갈 것이라 예언한다. 다음번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정권이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실로 끔찍한 예언이다. 

관건은 국민 다수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며 살 것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는데,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자기를 희생해 나라를 살리려는 의로운 부자도, 애국심과 정의감에 불타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정치인도,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땀 흘려 먹고 살겠다고 결단하는 건강한 시민도, 열심히 공부해서 기업을 일구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학생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정권의 횡포에 분노하지만, 나는 우리 국민의 전반적인 상태가 걱정스럽다.

 

 

윤 정부에 '반발하지 않는' 국민들... 왜 이렇게 됐을까

이타심과 애국심 회복한다면... 희망은 있다

 

나는 지난달 <오마이뉴스> 칼럼(어느 경제학자의 끔찍한 예언... 국민의 전반적 상태 걱정된다)에서 "자기를 희생해 나라를 살리려는 의로운 부자도, 애국심과 정의감에 불타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정치인도, 부동산 투기가 아닌 땀과 노력으로 먹고살겠다고 결단하는 건강한 시민도, 열심히 공부해서 기업을 일구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학생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다.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고 했던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경고에 기대서 한 말이다.

 

국민의 전반적 상태에 대한 내 진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지난 한 달 동안 학교 현장에서,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과거에 보지 못했던 끔찍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약간의 지각이라도 있다면, 이 모든 일이 하나의 깊은 원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물론 국민의 전반적 상태가 이렇게까지 된 것을 두고 국민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나라 살림을 맡은 정치인들,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언론들, 진리를 탐구하고 밝혀야 할 지식인들의 책임이 막대하다. 그들의 배후에서 온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기득권층의 책임이야 일러 무엇 하겠는가.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평등지권 사회,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

 

2차 세계대전 후 출현한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은 농지개혁을 성공시켜 전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를 이룩했다. 지주의 땅을 유상몰수해서 소작농에게 유상분배하는 엄청난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얼마 전까지 극도로 불평등했던 '대지주의 나라'를 '평등한 소농의 나라'로 급변모시킨 것이다. 나는 이를 평등지권(平等地權) 사회라고 부른다. 

지주들 밑에서 고율 소작료에 시달리다가 자기 땅을 갖게 된 소농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해서 재산을 불렸고, 그 돈으로 자녀 교육에 투자했다. 식량 증산과 우수한 노동력 공급, 사회 엘리트층 배출 등 경제성장에 꼭 필요한 중요한 요인들이 농지개혁의 효과로 출현했다. 외국의 학계에서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매우 빨랐다는 것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분배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른바 '공평한 고도성장'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농지개혁 단행 이후 한국 사회가 누렸던 평등성은 공업화·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했다. 땀 흘려 일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 외에도 돈을 벌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처음에는 권력자 주변 사람들, 나중에는 일반 국민까지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급기야 한국 사회에서 돈을 벌려면 무조건 부동산을 사야 한다는 '신화'가 형성되었다. '토지 신화', '부동산 불패 신화'라는 신조어는 그렇게 등장했다. 농지개혁으로 실현된 평등성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고, 토지와 부동산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어 소득·자산 불평등의 핵심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부동산 때문에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졌고, 부동산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망한다. 부동산 때문에 등 붙일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서민들의 애환은 깊어져 가고, 부동산 때문에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피하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부동산 때문에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모든 경제문제의 뿌리에 부동산이 자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업화·도시화가 진행되는 곳에서 토지가치가 상승하고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찬란했던 평등지권 사회가 문제투성이의 부동산 공화국으로 추락했다는 점에서 유별나다. 여기에는 박정희 정권의 무분별한 도시개발, 그 후 정부들의 냉열탕식 부동산 정책 운용,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한 토건족의 과대 팽창과 그로 인한 언론의 부패 등의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서 평등지권 사회가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추락 일변도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을 근절하여 토지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민과 정부의 노력이 있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문제는 한국 국민이 그 성과를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개혁과 개혁파 참모들

 

첫째, 이승만 정부가 단행한 농지개혁 자체가 모든 농민에게 평등지권을 부여해 조선 후기 실학파들이 꿈꾸었던 사회를 창출했다. 이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이상을 실현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최근 뉴라이트 인사들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농지개혁을 이승만의 치적으로 극구 상찬한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들이 왜 이런 발언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사실 인식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우선 이들은 지금 한국에서 농지개혁과 유사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면 거품 물고 반대하리라 짐작한다. 스스로 지지하지 못할 이상을 이승만이 실현했다고 상찬을 하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승만은 농지개혁을 농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여기고 추진하지는 않았다. 단지 미국의 압박과 당시 지주층의 견제를 누르고 농민층을 무마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추진했을 뿐이다. 농지개혁을 개혁으로 여기고 성공시키기 위해서 헌신했던 사람들은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과 농림부 내 농지개혁법 기초위원회 인사들(조봉암, 강정택, 강진국, 이순탁 등 4인), 그리고 국회 내 혁신적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이었다. 물론 이런 엄청난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미국이 남한의 농지개혁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둘째, 박정희 정권의 무분별한 도시개발의 결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기 시작해 주기적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노태우 정부가 종합토지세와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했다. 1986년부터 이어진 국제수지 흑자가 1988년에 절정에 달하고, 그해 3월에 13대 총선, 9월에 서울올림픽이 치러지자, 막대한 유동성이 시중에 풀리면서 엄청난 투기가 발발한 것이다. 1989년 전국 평균 지가 상승률은 39%를 기록했다. 노태우 정권은 이를 사회의 토대를 흔드는 위험한 현상으로 받아들였고, 부동산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조순·문희갑·김종인 등 개혁적 성향의 정부·청와대 인사들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이 정책에 대해 국민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토지공개념을 두고 행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거의 90%에 달했으니 말이다. 이때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 등의 언론도 토지공개념을 지지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었다. 

국민이 깨어 있고, 언론이 공정하며, 국민 여론에 부응하는 개혁가들이 있으면 상당히 의미 있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토지공개념 3법은 위헌 소송의 대상이 되어 모두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으며, 그 가운데 '택지 소유 상한에 관한 법률'은 1999년 위헌 판정이 내려지기 전 위헌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폐지되었으며, '토지초과이득세법'은 1994년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후 문제 조항의 개정을 거쳐 몇 년 동안 유지되다가 1998년에 폐지되었다. 단, 토지공개념 3법 가운데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은 1998년 위헌 판정을 받았지만, 문제 조항의 개정을 거쳐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국민이 토지공개념을 위헌이라고 믿는 것은 토지공개념 3법이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던 기억을 가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했을까
 

셋째, 노무현 정부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이 근본 문제라는 인식을 깔고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노무현 대통령부터 2003년 11월 "강남이 불패라면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고 하고, 2006년 4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완화되거나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할 정도로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도 펼치지 못한 기념비적인 것들이었다. 부동산 실거래가 제도를 도입하여 시장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 부동산보유세 강화의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법제화한 것, 개발이익 환수제도를 정비한 것,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행복도시와 혁신도시 건설을 추진한 것,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서 주거복지의 수준을 높이고자 한 것 등 이루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런 뛰어난 정책들이 추진될 수 있었던 데는 노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 이정우·정태인 등 개혁파 청와대 인사들의 맹활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니, 부동산 과다 보유자들과 토건족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이들은 조·중·동 등 보수 언론과 시장 만능주의 학자들을 대거 동원했다. 

보수 언론과 시장만능주의 학자의 주장은 소위 '세금폭탄론'으로 집약되어 당시 언론 지면을 연일 장식했다.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도입해서 집 한 채 가진 서민들에게까지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수가 3조 원도 안 되는 작은 세목에 이렇게 맹렬한 공격이 가해진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러자 종부세 부담과 아무 관련이 없던 중산층과 서민층, 지방 주민들이 마치 노무현 정부가 자신들에게 세금폭탄을 퍼붓기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장담했던 집값 안정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대적인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그렇게도 강조했던 이유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싸움'에서 대중이 언론과 학자들의 여론조작에 너무도 쉽게 넘어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보수 세력의 퇴락

 

넷째,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도입한 개혁적 부동산 제도를 모조리 뒤집었다. 두 정부의 임기 동안에 시장 만능주의적 부동산 정책은 절정기를 맞았다. 과거 보수 정부들은 그래도 부동산 투기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했지만,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는 거꾸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으로 일관했다(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기억하라). 이는 보수 세력의 퇴락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시장 만능주의적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에 불이 붙기 시작한 즈음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토지공개념 명시하는 개헌안을 제안하는 등 일부 개혁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으나 집권 후 3년 동안 내내 시장을 적당히 마사지하는 일에 몰두했다.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중요한 정책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제야 다주택자에게 정말로 세금폭탄을 퍼붓는 무리한 정책을 쏟아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참모들도 대통령의 심기를 살필 뿐 부동산 개혁을 추진할 생각이 없었다. 결과는 재집권 실패였다. 언론 환경은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더 나빠졌다. 조·중·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이 시장 만능주의적 정책을 지지했다. 일반 시민의 생각도 크게 바뀌었다. 단순히 세금폭탄론의 영향을 받아서 정치적 판단을 그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투기에 나서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옳다고 믿게 되었다. '영끌족' 이야기, 건물주를 꿈꾸는 중학생 이야기 등은 이런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보다 더한 윤 정부의 부동산 시장 만능주의 정책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오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명박 정부보다도 더 빠르고 철저하게 시장 만능주의적 부동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종부세·재산세·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장치들이 모조리 후퇴했고, 문재인 정부가 일부 성과를 낸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도 축소되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는 완화되었고 금융규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윤석열 정부의 이런 정책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데 대해서 시민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한 정책이 시행되는데도 큰 반발이 없다. 이를 두고 국민의 도덕성이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인간의 마음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뒤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하고 은근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암시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일찍이 이 사실을 간파하고 시민에게 진리의 힘, 이타심,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노력했던 헨리 조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보다는 힘없는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이익을 따지는 마음보다는 의무감이 사회의 개선에 더 효과가 있으며, 이기심보다는 동정심이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다.

모든 위대한 사회개혁은 자신의 기쁨만을 추구하는 정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낫고 고상하고 행복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정신으로부터 시작되고 활성화된다. 왜냐하면 사악한 맘몬[부와 탐욕의 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라도 이기적인 사람들을 매수하지만,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매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사회문제의 경제학>, 돌베개, 123~124쪽)."


지난달 칼럼에서 말했듯이, 현재 한국 국민의 전반적 상태는 별로 좋지 않다. 이 상태로 가면 다음번에는 더 악한 선동가에게 권력이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예전에 가졌던 이타심과 애국심을 회복한다면, 대한민국은 농지개혁 이후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정의의 길, 도약의 길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