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를 통해 해외 드라마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제목은 ‘휴먼스’. 영미합작 드라마인데, 스웨덴 원작 드라마 ‘리얼휴먼’을 리메이크했다고 한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단숨에 시즌1을 마치고 현재 시즌2를 애시청 중이다. 내용 소개는 각설하고 몇 가지 상념을 남겨둔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문제들 즉, 휴봇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한다거나 그들이 의식을 갖게 되면서 반대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위기 등에 대해 전해 주고 있지만 그건 1차적인 메시지이다.
내가 가진 질문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그래서 휴봇과 다르고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는 ‘의식’ 혹은 ‘인간성’이라는 것이 과연 훌륭하기만 한 것인가? 그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 인류가 휴봇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의식’과 ‘인간성’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며 고귀하게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는가? 였으며,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 대한 것이며, SF 장르가 아니라 철학 다큐로 재분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역시 선진국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보고서야 인공지능에 대해 떠들어 댔고, 다포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 공유된 후에야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무엇을 확보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있는데, 이미 2015년에 휴먼스가 방영되었고, 심지어 원작은 2012년에 전파를 탔다. 그것도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1차원적인 주제가 아니라 휴봇과 인류가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을 때 나타날 갈등에 대한 논의를 하게하는 훨씬 진보적이고 다차원적인 영역을 말하고 있다. 선진국은 벌써 4차 산업혁명에 있어서도 소위 ‘기준’과 ‘프레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우리 드라마를 보라…
한편으로는 휴봇이 부럽기도 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역량도 그렇지만, 국가의 정의, 사회의 정의, 조직의 정의에 굉장히 민감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분노나 서글픔을 느끼지 않고 관찰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들의 초연함이 때때로 간절하기 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하루하루 지내는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목도하는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 그리고 그것이 세대, 사회, 국가 시스템과 상당히 오랜 전부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감. 이런 것들에게서 나를 자유롭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다. 40대로서의 그 4춘기를… 옛 선현들은 약관이나 이립 시절 즈음에는 이미 마쳤을 나에 대한 고민, 세상과 역사에 대한 인식에 이제서야 눈을 뜨고 하나하나 깨우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더 늦지 않은 지금이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또한 오늘의 이 고민과 진실을 꼭 아이들에게 정제하여 전해 줄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 또한 ‘보라빛 인생’이다.
'글사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술에 대한 일견(후편) (0) | 2021.08.23 |
---|---|
무술에 대한 일견(전편) (0) | 2021.08.23 |
우리가 우주 다큐멘터리를 볼 때 (0) | 2021.07.22 |
3.1절 98주년을 대하는 나의 자세 (0) | 2021.07.14 |
댄서의 순정 30주년을 자축합니다. (0) | 2019.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