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무술에 대해 말해 볼까 한다. 나의 필명이자 별명인 '댄서의 순정'을 구성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 춤, 무술, 음악이라서 이렇게 무술에 대한 경험이나 생각, 일화를 적는 것은 개인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무술에 대한 관심과 접근도 춤에 대한 그것과 많이 닮은 것 같다.
먼저 어떤 대상에 매료되어 흉내 내고 모방하면서 그 대상처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다음으로 동일 범주에 있는 다른 것으로, 나아가 연관 범주에 있는 것까지 관심이 확장된다. 이렇게 시간과 양이 어느 정도 충만해지면 그 대상이 가지는 원류, 철학, 원리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궁금해지고, 이를 탐구하여 나름의 결론을 찾아 저의 사상체계나 지식체계와 연결시키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을 거쳤다. 바로 춤, 무술, 음악에 대한 나의 접근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인문학, 전략경영, 사회현상으로 점차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사실 이런 과정,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의 "공부"라는 재미에 몰입하고 있다.
춤보다는 확실히 덜 화려(?)하지만 무술에 대한 나름의 이력을 간추려 보면, 초등 5학년 합기도 1달 수강을 시작으로 육사 생도시절에 태권도 2단, 프로태권도 2단을 획득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였고, 최근까지는 대산배달 최영의 총재의 극진공수도를 독학하고 있다. 처음 무술을 접하기 시작하여 나름의 시사점을 얻기까지의 몇몇 일화들은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 무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본다.
이 땅에는 실로 많은 종류의 무술이 존재한다. 이들 무술은 당대, 그리고 해당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처한 환경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진화되었고 차차 특정한 공격과 방어의 원리를 공유하는 유파를 형성하고 또 나뉘어 왔다. 공수도만 하더라도 중국의 남파권법이 오끼나와에 전해져 오끼나와 공수도가 창시된 이후, 1940년대에 일본 본토로 넘어와 전통공수도인 송도관류, 강유류, 사동류, 화도류 등으로 정착되었는데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500여개의 유파에 이른다고 한다. 공수도만 보아도 이럴진대 아시아, 유럽, 미주 대륙까지 시야를 넓혀 보면 얼마나 많은 무술이 존재할까?
이렇듯 다양한 무술을 크게 분류해 보면 격술과 유술로 나눌 수 있다. 격술은 흔히 입식타격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팔과 다리로 상대를 때리거나 차서 충격을 주거나 무력화시키는 기술이다. 이때 팔에는 어깨, 팔꿈치, 손등, 손바닥, 주먹, 손가락으로 하는 공격을, 다리에는 무릎, 정강이, 발등, 발앞꿈치, 발뒤꿈치로 하는 공격을 포함하며 이마로 하는 공격도 해당한다.
격술의 공격은 타격을 줄 수 있는 힘과 타격력이 궤적을 그릴 수 있는 일정한 이동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소룡은 자신의 무술 절권도를 시연하면서 '1인치 펀치'를 선보이며 최소한의 이동거리에서도 파워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선보였지만, 1인치도 주먹과 타격점의 거리가 떨어져 있음을 의미하며 결정적인 임팩트를 줄 때 하체도 함께 이동하였다는 점에서는 격술의 기본적인 원리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것이라 판단한다. 부연하자면 이동 궤적 속에서의 힘은 항상 동일하지 않다. 힘을 이동시키는 궤적을 그리다가 힘이 최고조에 달하는 궤적 상의 점이 있고 이때 타격점과 만나면 최고의 임팩트를 주는 것이다. 이를 리듬(박자)이라 이름 붙여 보았다.
격술의 또 다른 핵심 원리는 공격 궤적을 받치는 다리와 허리의 회전력이 전제되어야 원하는 임팩트를 전달할 수 있다. 특히 허리의 회전은 팔 공격이든 다리 공격이든 공히 작용하는 힘이고 이때 하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상대가 격술로 공격을 해올 때 힘, 이동궤적, 허리 회전력, 하체 지지력 중 어느 하나라도 회피 또는 완화할 수 있다면 임팩트를 줄일 수 있다. 이런 격술의 원리를 뛰어 넘는 경지는 입식타격을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며 "수라의 각" 과 같은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일본 무술의 제자백가 또는 백가쟁명 시대라 불리는 막부시대(미야모토 무사시가 활약했던)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무츠원명류"의 계승자들의 이야기인데 무츠가 구사하는 기술들을 보면 예의 그 로망을 채워주는 듯 하다. 정권을 상대의 가슴에 붙인 상태에서 타격해 함몰시키는 장면, 다리가 아닌 팔을 지지력으로 뛰어 발끝을 차올리는 장면이 생각난다.
유술은 조르기, 꺾기, 메치기, 누르기 등의 기술로 상대의 뼈를 부러뜨리거나, 근육 또는 관절에 데미지를 주어 정상적인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조르기 기술은 흔히 숨을 못 쉬게 해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은 목을 지나는 경동맥을 압박하여 질식하기 전에 의식을 먼저 잃게 하는 기술이다. 던지기나 메치기는 낙차를 이용한 기술이다. 상대의 중심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바닥이나 견고한 물체에 상대의 신체 부위가 부딪히게 하여 부상을 입히는 것인데 실로 무시무시한 기술이다. 유도 시합을 보면 업어치기 등 던지는 기술을 할 때 잡은 상대의 소매나 옷깃을 끝까지 잡고 있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벌점을 준다. 실전과 시합의 차이를 만드는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던지는 과정에서 적절한 박자에 소매나 옷깃을 놓으면 등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깨나 머리로 충격을 오롯이 받게 되고 낙하지점에 돌이나 뾰족한 물체가 있다면, 게다가 낙차가 크고 상대의 몸무게가 무겁다면 가히 치명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유술은 무게중심의 이동을 잘 활용하는 것이 우선 매우 중요하다. 상대의 중심 이동 경로와 박자를 적절히 이용하고 자신의 중심이동과 공명을 이루면 공격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 보통은 상대의 중심을 자신의 중심에 가까이 둘수록 증폭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또한 꺾을 때(꺽는 대상은 손목, 팔관절, 발목, 무릎관절, 어깨관절 등 다양하다.)와 던질 때 힘점과 받침점이 확보되어야 원하는 임팩트를 가할 수 있는데, 주짓수나 유도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상대에게 잡혔을 경우 그 힘점과 받침점 중 어느 하나라도 내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격술과 유술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한 내용을 적어 보았는데, 검술을 포함한 도구를 사용하는 무술은 차원이 조금 다른 것 같다. 광의로 해석해 보면 검, 도, 창, 곤 등의 도구를 신체의 연장선으로 보아 격술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도구와 신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구현되는 다른 경지의 무술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쪽 세계에서는 "검도 3배단"이라는 말이 있다. 검도 1단은 타 무술의 3단에 해당한다는 의미인데, 그만큼 검이라는 파괴력을 인정하고 도구와 일체를 이루기 위한 수련의 깊이와 경지를 높게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권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대체적으로는 태권도를 우리나라의 전통 무예로 보고 있다. 학계의 연구도 그러하고 관련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대부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대 무예인 '수벽치기'에서 유래를 찾기도 하고, '태껸'(택견이라 하기도 합니다.)에서 흔적을 찾기도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1960년대에 최홍희 총재가 태껸과 공수도를 수련하고 이들을 융합하고 새로운 프레임과 이론을 접목하여 창시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자는 세계 태권도 연맹(WTF)으로, 후자는 국제 태권도 연맹(ITF)으로 각각 입장을 달리했다.
이 단체들이 생긴 시기를 살펴보면, 최홍희 총재가 주변 9개국의 승인을 얻어 ITF를 발족한 것이 1966년이고, 박정희 정권이 태권도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본부를 이전한 것이 1972년, 김운용 총재가 WTF를 설립한 것이 1973년이다. 또한 박정희 태동령이 '국기태권도'라는 휘호를 내린 시점이 1971년이고, 국기원은 1973년에 건립된다. 개인이 창시한 무예가 '국기'라는 다분히 의도적인 목적을 내포한 단어로 포섭되는 것을 아마도 최총재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고 지금의 태권도 산업을 이루며 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는 유파는 WTF인 반면, ITF 유파는 북한을 포함한 주로 공산권을 중심으로 보급 활동을 하다 보니 한국에는 유입되지 못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총재의 주요 이력은 지금과 같이 태권도가 분파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되어 평양의 한 부대에서 근무하였고, 조선 학병을 중심으로 전국 반일동맹 조직을 도모했다가 검거되어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풀려났다. 6군단장으로 1962년에 예편하기 전 박정희와 쿠데타를 논의하였으나 쿠데타 성공 후 소외된 그가 캐나다로 망명한 후 유신체제 반대 운동을 펼쳤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러모로 당시 정권과는 융화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개인이 창시한 무예에 대한 애착도 있었겠지만 결정적으로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의 힘도 한몫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무예라는 순수함을 추구하는 무술에 이렇게 개인의 인생 굴곡이, 사회적 역학이 작용했다고 하니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다른 측면에서 태권도를 바라본다. ITF든 WTF든 태권도의 원리나 동작을 볼 때 우리의 전통적인 습성과 환경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산지가 많은 경사진 우리나라의 지세에서 발차기를 중심으로 무예가 발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흔히 우리가 싸울 때 혹은 시비가 붙었을 때 상대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소매를 접어 올리는 동작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을 보면 전통적인 무예의 방식은 유술 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 이종격투기에 한국 선수들이 참여하지만 킥복싱이나 유술 등 타 무술을 섞지 않은 태권도만의 기술로 임한 시합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이거나 승리를 거둔 경기가 매우 드문 경우를 보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선정된 이래 너무 산업으로만 치우진 것이 아닌지, 시합이라는 틀 속에서 생사를 다투는 무술로서의 야성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전통의 무예로서 무조건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진화의 기회를 흘려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아쉬운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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